재산분할
남편이 "이 집은 내가 결혼 전에 산 거니까 네 몫은 없다"고 했을 때, 18년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결혼 전 취득 자산은 분할이 어렵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신결에서는 "혼인 중 대출 갚아주신 통장 내역만 있어도 충분히 다툴 수 있습니다"라며 18년치 입출금 내역을 함께 정리해 주셨습니다. 매달 제 월급에서 빠져나간 대출 이자, 시댁 행사에 들였던 비용, 집 수리에 보탰던 돈까지 다 증거가 되더라고요. 결정문에서 시세 차익까지 절반을 인정받았을 때, 18년이 통째로 인정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김지선
신현한
황혜원
재산분할
별거 기간이 길어서 오히려 불리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결에서는 그 기간 동안 제가 어떻게 생활을 유지했고 아이를 키워왔는지를 기준으로 정리해주셨습니다. 그걸 보면서 ‘이 시간도 그냥 버틴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를 받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건 숫자가 아니라, 제가 버텨온 시간이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윤주만
상간자소송
제가 가진 거라곤 대화 캡처 몇 장이 전부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 정도로는 인정받기 어렵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신결은 달랐습니다. 대화의 흐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법정에서 설명해주셨고, 제가 놓쳤던 상대방 SNS 흔적까지 찾아 증거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증거가 적다고 진실이 가벼운 건 아닙니다"라는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판결문을 받으며, 제가 본 것이 환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법이 확인해준 것 같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신태길
신현한
황혜원
이혼소송
남편이 대학병원 교수라는 사실 하나로 주변에서는 "이혼해서 뭐가 남겠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상담받은 곳에서도 "특유재산 주장이 들어오면 분할 비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신결은 달랐습니다. 통장 내역, 병원 자료, 부동산 등기까지 하나하나 확인하시면서 "이건 분명히 혼인 중 재산입니다"라고 근거를 들어 설명해주셨습니다. 제가 15년 동안 아이들 키우고 집안일한 것도 당연한 게 아니라 정당한 기여라는 말씀에 그제야 어깨가 펴졌습니다. 판결문을 받아보고 나서야, 제가 이 결혼에서 했던 모든 일이 법의 언어로 인정받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배지은
원지혜
김지선
상간자소송
남자가 상간소송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그게 되냐"는 반응이 먼저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외도한 사실보다, 그 말을 꺼내는 일이 더 무거웠습니다. 신결에서는 성별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제가 겪은 일을 법적 쟁점으로 정확히 짚어주셨습니다. 아이를 혼자 키우겠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의 양육권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며 구체적인 판례와 근거를 들어 설명해주셨습니다. 판결이 난 뒤에야, 제 상처가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 파괴에 대한 엄연한 피해라는 사실을 법이 확인해주었습니다.
윤주만
원지혜
배영동
이혼소송
자식들 다 키우고 이혼하겠다고 하니 "이제 와서 뭘"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때린 적도 없고 외도한 적도 없으니 "너만 참으면 된다"는 말을 25년 동안 들었습니다. 신결에서는 제가 꺼내놓은 오래된 가계부, 병원 기록, 메모 한 장까지 전부 증거가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공무원 연금 분할 부분은 상대방 변호사가 강하게 반박했는데, 신결은 관련 판례와 공무원연금법 조항을 근거로 차분히 주장을 관철시켜주셨습니다. 판결이 난 날, 25년 만에 처음으로 제가 제 삶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이혼을 고민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늦은 때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태길
장혜원
주민주
이혼소송
집을 나왔을 때 가진 거라곤 아이 손 두 개와 가방 하나였습니다. 남편이 직장으로, 친정으로 찾아올까 봐 매일 잠을 못 잤습니다. 신결에서는 첫 상담에서 접근금지와 임시양육자 지정부터 바로 진행해주셨고, 주소가 노출되지 않도록 서류 하나까지 세심하게 처리해주셨습니다. 법정에서 변호사님이 제가 겪은 일을 차분하게 정리해 말씀해주실 때, 그동안 "내가 맞을 짓을 했나" 자책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부당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이 이제는 밤에 누가 문을 두드릴까 봐 울지 않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신결을 찾은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윤주만
배지은
주민주
상간자소송
상대가 부정행위 자체를 부인하니 제가 미친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친한 직장 동료"라는 주장이 반복될수록 제 억울함을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신결에서는 제가 가진 단편적인 증거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주시면서, 어떤 자료가 더 필요한지 차근차근 안내해주셨습니다. 결제 내역 하나, 메신저 한 줄이 모이니 부인할 수 없는 그림이 만들어졌습니다. 판결을 받고서야 제 상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았습니다. 법정에서 진실이 숫자와 기록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겪어본 사람만 알 것 같습니다.
신태길
배지은
장혜원
가정폭력
술만 마시면 기억이 안 나고, 다음 날이면 아내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게 몇 번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술 때문”이라고 넘겼는데, 그건 변명이었더라고요. 사건 터지고 나서야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습니다. 가족을 지켜야 할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겁니다. 신결에서는 제 잘못을 피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제대로 마주하게 만들었습니다. 치료도 시작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제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대로 갔으면 저는 진짜 모든 걸 잃었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게 해주셔서 신결에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특히 저를 따끔하게 혼내주셨던 신태길변호사님께 두번 세번 감사 인사를 전하고싶습니다.
신태길
주민주
김아영
양육비
남편이 사업 실패 후 집을 나간 뒤, 전화도 안 받고 주소도 바꾼 상태였습니다. “그런 사람한테 무슨 위자료냐”라고 주변에서 다 말렸습니다. 저도 포기하려 했지만, 아이들 양육비만큼은 꼭 받아내고 싶어 신결을 찾아갔습니다. 신결은 “소장만 넣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받아내는 것까지 설계하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의 계좌와 급여까지 끝까지 추적해주시고, 판결 후에도 집행 절차를 직접 챙겨주셨습니다. 받지 못할 줄 알았던 돈이 실제로 통장에 들어왔을 때, 그제야 아이들 교복값 걱정 없는 밤을 보냈습니다. 신결은 소송만 하고 끝나는 곳이 아니라, 진짜로 해결해주는 곳입니다.
원지혜
김아영
신현한
이혼소송
맞지 않고 외도하지 않으면 “그래도 괜찮은 남편”인 줄 알았습니다. 월급은 시어머니에게 다 가고, 저는 친정에서 돈을 빌려 아이 기저귀를 사야 했던 5년이었습니다. 이혼 이야기를 꺼내면 주변에서도 “그 정도로 뭘 이혼까지”라는 말을 돌려받기 일쑤였습니다. 신결은 달랐습니다. “이것도 엄연한 가정 파탄입니다”라고 말씀해주시며, 제가 모아둔 영수증 하나하나까지 증거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던 서러움이 법정에서 숫자와 문서로 또렷이 드러난 순간, 그제야 제가 얼마나 오래 잘못 참아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신결은 제 긴 침묵을 법의 언어로 번역해준 분들입니다.
윤상구
장혜원
김지선
양육권
주변에서는 “아빠가 무슨 양육권이냐, 포기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매일 학교에 데려다주고, 저녁을 차리고, 아픈 날 병원에 데려간 건 저였는데도 법이 ‘엄마 쪽’으로 기울어 있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신결은 “판례가 바뀌고 있습니다. 아빠가 주 양육자였다면 충분합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일일이 챙겨둔 아이들 일정표, 병원 영수증, 학교 알림장 하나하나가 증거가 되었고, 아이들이 법원에서 “아빠랑 살고 싶다”고 말해준 것도 큰 힘이 됐습니다. 판결문을 받아든 날, 첫째가 “아빠 우리 못 떨어지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아빠로서 “그래, 아빠가 끝까지 지킬게”라고 대답할 수 있게 해준 신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민주
배영동
한충희